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친구 쉼터방

또 하나의 만남/詩 박영배

by "백합" 2009. 12. 17.

 

 

 

      또 하나의 만남/詩 박영배
      목마르는 7월
      한낮의 이글거리는 햇살
      타들어가는 大地의 거친 비명도
      내 가슴속까지 밀려오는
      그 소리를 어쩌진 못했다
      그쳤다 또 더듬더듬 들리는
      모래와 흙바람으로 삭막한 사막에서
      땀과 흙에 지친 영혼에게
      그 소리는 오아시스였고 생명수였다.
      달빛 밤이면 피리를 곧잘 불던
      초등생 사내아이의 고향은
      늘 가난하고 쓸쓸했다.
      그래서 마냥 불어대던 그 피리
      오늘 피리소리의 그 주인 역시 마음씨 착한
      가난하고 쓸쓸한 사내아이일 것이다
      난 그 사내아이를 보면 울어버릴지도 몰랐다.
      가슴 졸이며 조심스럽게 다가가면
      그쳤다 다듬더듬 들리는 그 메아리는
      잔잔한 개울물 소리 따라
      草野에 나지막이 흘런내리고 있었다
      면사포를 쓴 신부가
      높은 구두를 신고 아버지 말에 의존한 채
      이별과 만남이 교차한
      주단 길을 천천히 걸어오듯
      그 소리는 기쁨과 슬픔으로
      내 심장을 마구 두들겼다
      이 집인가
      저 집인가
      한참을 서성이다 찾아간 그 곳
      수없이 지나다녔던 그 길목 아래 아담한 집
      분명히 이곳에서 내가 찾은 소년은
      피리를 불고 있을 것이다.

대문에 들어서니 소리가 그치고

난 또다시 귀를 기울이며 다른 쪽으로

시선을 옮기려는데

아 ! 다시 그 집에서 소리가 들리고

은빛 물체를 든 사람이 보였다

한 발자국 더 다가서서 그를 확인했다

             여인이었다
                가난하고 쓸쓸한 고향이 아닌 아늑한 전원
                초등생 사내아이가 아닌 젊은 여인
                부푼 기대만큼은 아니라도
                뜻밖의 생각으로 집 밖을 나오려는데
 
                연한 분홍색 계통의 원피스를 입은 여인은
                가냘픈 미소를 머금고 
                내 말을 다 듣기도 전에
                남편이 옆에 있으니 괜찮다며
                한사코 들어와 차 한잔 하라고 권유했다
 
                꾸밈없고 소박한 말씨와 수줍은 표정
                겸손하면서도 예의바를 것 같은 성품
                그 여인은 플루트를 들고 있었다
                이제 배우는 중이라고 하지만
                그기 빚어내는 은은한 소리는 
                잔뜩 말라버린 대지에 단비를 내리게 하고
                내 어린시절 푸른 꿈 동산을 
                촉촉히 적셔주었다
 
                자상한 남편이 손수 차를 끓이고
                우린 오래전 만난 사람들처럼
                스스럼없이 차를 마시면서
                설렌 가슴을 달래고 돌아오긴 했지만
                오늘도 난 어린시절 
                그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
                자꾸 귀를 기울여 본다.
 
            
        --박영배 시집<또하나의 만남> 중에서--
 
 
 
 
 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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