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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• 은빛나라
손님 방

회색바다 수도원(Mont St.michel 몽생미셀)

by "백합" 2008. 4. 14.
 
Mont St. Michel 몽생미셸 

프랑스 북부 Normandie(노르망디), 
이곳 고단(孤單)한 성자(聖者)의 
모습으로 서 있는 
회색(灰色) 바다 수도원 灰色 모래바다 위 고독한 이 모습은 
여행자가슴을 설레게 한다.
900m 제방을 쌓기 전에는 썰물 때만 접근해야하는 
어려움이 있었다.조수(潮水) 간만 차
(干滿 差)가 최고 15m나 되어 거친 파도로 
많은 수도사(修道師)들이 
목숨을 잃기도 했다. 

높은 첨탑(尖塔) 고색창연(古色蒼然)한 베네딕투스
(Benedictus)會 수도원이 고고(孤高) 자태는 
지금도 순례자(巡禮者)의 발길을 재촉하고 있다. 
이곳도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중 하나이다. 
스낵코너에서 맛 본 이곳 특산품 메밀전병(煎餠)
크레프(crepe)와 사과 술[아주 약한 알코올 
농도]시드르(cidre)감칠 맛은 또 다른 
'몽생미셸“의 추억(追憶)으로 남겨지고 있다. 


 

 




 

 




 




 

 

 

 
 
 

 

  
 
 
 
 
 
 
 
 
 
 
 
 
 
  
      
 
프랑스 바스노르망디 지방 망슈 주에 있는 작은 바위섬이며 유명한
성역. 렌의 북쪽으로 노르망디 해안에 있다. 몽생미셸은 거의
원형으로 원주가 약 900m이며 브르타뉴와 노르망디 사이에 있는
몽생미셸 만(灣)에 화강암 노두로 날카롭게 솟아 있다(88m)
대부분의 시간에는 거대한 모래둑으로
둘러싸여 있다가
만조일 때만 섬이 된다.


이 섬을 육지와 연결해주는 900m 길이의 둑길이 건설되기
전까지는 표사(漂砂)와 매우 빠른 조류 때문에 접근하기가 어려
웠다. 섬의 꼭대기에 있는 옛 대수도원은 멀리서 볼 때 감탄을
자아낸다.원래 몽통브라고 불렸던 몽생미셸은 아브랑슈의 주교인
성(聖) 오베르가 이곳에서 대천사 성 미카엘의 모습을 보고
소(小)예배당을 세웠던 8세기부터 지금의 이름으로 알려지게
되었다.


그 후 곧바로 주요순례지가 되었으며 966년에는 베네딕투스
수도회의 대수도원이 세워졌다.
프랑스 왕 필리프 2세(1180~1223 재위)가
섬을 차지하려고 했던 1203년에 일부가 불에 탔으며,
이에 대해 필리프 왕은 수도사들에게 돈을 지불해
라메르베유('경이'라는 뜻) 수도원을 짓게 했다.
1256년에 요새화된 몽생미셸은 잉글랜드와
프랑스 사이에 있었던 백년전쟁(1337~1453) 및
프랑스 종교전쟁(1562~98) 동안 포위
공격에 굴복하지 않았다.
1469년 프랑스 왕 루이 11세(1461~83 재위)는
성 미카엘 왕립기사단을 설립했다.
그러나 이 수도원은 18세기에 쇠퇴해 프랑스 혁명으로
 해산되었을 당시에는 단지 7명의 수도사만이 살고 있었다.


나폴레옹(1804~14 재위) 치하에서 국사범 감옥이 된 이래
계속 감옥으로 쓰였으며 1863년 사적기념물로 분류되어
복원되었다. 오늘날은 프랑스의 주요관광명소로 손꼽힌다.
섬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솟아 있는 수도원 교회는
11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위압적인 신랑(身廊)과
플랑부아양 고딕 양식의 우아한 성단
(1450~1521 지음)을 갖추고 있다.


성 미카엘 상이 있는 탑과 뾰족탑은 19세기에 지은 것이다.
이 교회 아래에 있는 3개의 지하실 가운데 가장 오래된
것은 카롤링거 왕조 시대(7~10세기)까지 거슬러 올라가는
것으로 추정된다. 화려한 고딕양식 수도원 건축물인
라메르베유(1211~28)의 외벽은 군사요새가 지니는
강렬함과 종교적 건축물이 지니는 단순함을 잘 조화시키고
있다. 가장 놀라운 장소는 높고 좁은 창문들이 있는 식당과
훌륭한 조각들을 갖춘 장엄한 회랑이다.
섬의 동쪽과 남쪽에 있는 중세시대 성벽(13~15세기)에서
몽생미셸 만의 전경을 즐길 수 있다. 대수도원으로 가는
꼬불꼬불하고 좁은 길에 나 있는 건물들은
주로 호텔이나 관광기념품 상점으로, 그중 몇몇은
15세기까지 기원이 거슬러 올라간다.